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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지식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삼일절'의 역사 (ft. 3.1 운동)

by 이방인의지식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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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곧 '대한민국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생일'인

'삼일절'이 다가오는데요.

 

 

1919년 3월 1일,

일제강젬기였던 시기에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독립선언일입니다.

 

 

 

올해 2023년은 104주년이군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삼일절의 역사

 

 

1910년 경술국치

1910년 8월 29일 경술년에 국가의 권력을

일본에게 빼앗겨버린 치욕의 날입니다.

 

일제는 이 시기에 우리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우리 역사와 말을

못 배우게 총과 칼로 지배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억압받고 있을 때,

바깥 세계에서는 큰 전쟁이 있었는데

이 전쟁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전쟁을 수습하며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는데요.

 

 

여기서 '민족자결주의'란

'모든 민족은 그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민족자결주의는 강대국에게 지배받던

힘든 나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고

경술국치로 아주 힘든상황의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불씨가 시작된 곳은

바로 일본의 동경(도쿄)였습니다.

 

 

1919년 2월8일 일본인들에게 차별받던

조선인 유학생 600여명이

'2.8 독립 선언'을 발표했죠.

 

이 '2.8 독립운동'의 소식은

안그래도 일제에 분노하던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는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그런데 죽음의 이유가

일본에 의한 독살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일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이틀 앞두고

불교, 기독교, 천도교 대표 33인은 모여서

독립 운동 날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3월1일에 독립운동을 하는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결정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는

노인, 아이, 학생, 농민, 상인 등

너나할것없이 모두모여

민족대표 33인을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민족대표 33인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종로에 있는 '태화관'으로

모임 장소를 옮겼습니다.

 

 

1919년 3월1일, 종로 태화관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한용운'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일본 경찰에 신고해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있었는데,

민족대표들이 오지않자

학생 대표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품에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함께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규모는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자 일본의 경찰과 군대가 나타나

칼로 찌르고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렇게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 동포들은 더욱 분노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만세 소리가 커질수록

독립도 가까워 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3월1일에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는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등

6개 도시의 만세시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주, 연해주, 미주 등

전 세계로 독립운동이 퍼져나갔습니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유관순'도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었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만세시위는

우리 민족의 뜨거운 독립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바람으로

일제의 탄압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평화를 위해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3.1운동으로 인해 우리가 바랐던 독립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일제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는척하며

폭력적인 통치 방식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눈속임일 뿐, 이 후에는

더욱 가혹한 통치가 시작 되었습니다.

 

 

 

 


3.1운동은 실패한걸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3.1 운동은 중요한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3.1운동은 대대적인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렸고

3.1운동을 시작으로 온 나라 곳곳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우리의 독립 의지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1운동 이후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1919년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가 광복될때까지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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